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

"왜 걸어다녀요?"

"왜 걸어다녀요?"


내가 종종 받는 질문이다.

요 며칠 사이에도 여러 번 받았다.

항상 내가 하는 대답은


"전 걷는게 좋아요."


이것저것 설명하기 귀찮을 때 하는 대답이고

보통은 이것저것 설명할 기회도 적당한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생각을 깊이 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듯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핑계를 대자면, 모든 일들은 여유있게 진행되지 않았고,

그 템포에 맞춰서 살아가려면 생각은 빠르게 정리되어야 했고

그에 따라 판단도 빠르게 이루어져야 했다.

일단 그렇게 판단이 끝나면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간에 내 사고는 거기서 끝나버렸다.
결과가 좋으면 그냥 좋은거고, 나쁘면 시간이 없었지 뭐~라고 자위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것을 깨달았는 때,
이것이 정말 내 생각인 것인가 하는 혼란스러움도 느꼈었다.
난 원래 여유있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었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가 가면을 쓰고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이것이 내 모습인 것인가 하며 힘들었다.

그때부터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걸어다니면 내 시간이 길어졌으니까...
자동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몇 시간동안 걸어서 가는 동안, 그 시간은 내가 방해받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그마저도 쉽진 않았다.
내가 차를 타던, 걷던 도착해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그 정해진 시간은 내 사유를 방해했다.
예를 들어 출근시간은 내가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조절하면 걸어갈 수도,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도 있다.
하지만 9시라는 출근시간에 사로잡혀서 사무실에 도착하면 뭐뭐뭐를 해야겠다라며 서둘러 생각을 정리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면 걸어다녔다.
여행 중에는 다음에 뭘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찾아보자면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 또는 오늘밤은 어디서 잘까 정도?
다음 행선지를 두고 마구 고민하다가 결정이 안되면 그냥 안가면 된다. 하루 정도 현재 있는 곳에 더 묵어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숙소를 정할 때도 수많은 고민(내가 여행 중 사유하는 시간의 절반 정도를 쓰는)을 하지만 결정이 안나면
걷다가 지친 또는 해가 져버린 근처에서 아무 곳이 찾아서 숙박한다.
여행 중이니까 가능하다. 그냥 이런 사유가 좋다.
원래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사는 놈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꼼꼼하지도 못한 놈이다 나는.
뭐 사유활동이라고 적긴 했지만 대부분은 잡스런 생각이고 도움이 되는 생각은 많지 않다 사실 ㅋㅋㅋ
하지만 그런 잡스런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워놓고 이러저리 짱구를 돌리는 것이 내가 지금 여유롭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즐거울 뿐이다.

차를 타고 빨리 가서 카페라도 들어가 편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되지않냐 라는 되물음도 있었지만 난 단호하게 대답했다.
난 현재 면허가 없고, 카페에는 어여쁜 여자사람들이 많아서 생각에 집중할 수가 없다라고... ㅋㅋㅋ
이런 시덥잖은 낙서를 하는 와중에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썼다가 지우고, 고쳐쓰고, 다시 쓰고. 즐겁다.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게스트하우스에 소중한 시간을 내서 모인 게스트들에게 해줬더니 역시나 반응은,
이뭐병, 흠좀무 정도랄까? ㅎㅎㅎ 아마도 술기운에 헛소리 하네 정도로 들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여행갈 때는 꼭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그냥 걷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지만 사진찍으러 걸어다녀요 하면 몇몇은 수긍해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휘밤 ㅋㅋㅋ
이 세상에는 잘난 닝겐들이 너무 많아서 나처럼 이상한 닝겐도 좀 있어야 균형이 조금이나마 맞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