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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건축이야기] 현실의 건축

나는 건축에 대해서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건축이라는 분야에 지식이 짧아서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_-
건축이란 학문, 분야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던 학부 시절 난 건축과에서 그저 그날 그날의 과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잠 잘 시간을 줄였었다.
창조적이라기보다는 카피에 가까웠고, 건축의 본질에 대한 탐구정신은 전혀없었으며 감각적으로만 접근하였었다.
이랬던 내가 4학년이 되어서야 몇몇 굉장하신(난 대가라고 칭해드리고 싶을 정도이다)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어 늦게나마 건축이란 것에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건축과를 졸업한 후 설계사무실에 입사하여 4년 가까이 실무전선에서 뛰고 있지만 건축의 본질이란 것에는 단 한 발자국도 접근하지 못했다.

나만의 건축세계를 정립하기에도, 건축실무를 제대로 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나의 배움 때문에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작 할 말은 별로 없다. (참 슬픈 현실이다 ㅠㅠ)

그래도 나 나름대로 현실의 건축을 바라보는 개미 눈꼽만큼의 시각은 있다고 믿으면서 아래에 내가 수없이 읽었던 책의 역자 서문을 적어본다.

책명은 "L'Architettura Della Citta" Aldo Rossi, 역자는 내가 건축을 진심으로 대하게끔 해주신 오경근 선생님이시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건축의 의미는 상당 부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건축 고유의 원리와 전통적 건축관은 현대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고증적 문제이거나 과거 지향적 경향 정도로 평가되었고, 건축의 자율적 세계는 건축가의 창조적 세계에 가려 간과되거나 왜곡되었고, 건축 고유의 영역은 종종 다른 분야와 지나치칠 정도로 간편하게 결합함으로써 그 범위를 넓히기 보다는 오히려 그 범위를 과장하는 혼란을 초래하였고, 건축의 역사는 현실을 형성해 온 일반적인 건축물들은 뒤로 한 채 대표적, 상징적 건축물 위주로 설명되기 일쑤였고, 건축가는 시대의 진정한 열망을 밝히기보다 일시적 요구와 변화를 따르고 충족시키기에 급급하였고, 건축 교육은 인내력보다는 순발력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에 의존하게 되었고, 건축형태의 의의는 곧장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몫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건축의 세계는 그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파악되었으며, 내부에서 바라보았다 하더라도 대단히 편협하고 편리한 관점으로 인해 의미가 축소되거나 변질되었다. 부족하거나 불편하거나 적당치 않다는 이유로 기존의 것, 즉 역사와 현실을 너무 쉽게 판단하거나 해석하려는 태도가 건축의 영역에서도 발생하였으며,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도 잃어버린 건축의 의미를 복구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 내용들이다.
지난 날의 건축들은 구태의연한 것들이 되어버렸고, 지금 환영받는 건축물들은 기능보다는 외형이 눈에 띄어야 와~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쟁 프로젝트들이 많은 탓일까? 이런 현상을 유독 한국에서 심한 것 같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근현대의 건축사에 있어서 굉장히 다양한 건축의 언어가 등장하였고 그 언어들의 짧았던 운명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크다. 현실의 건축이 되지 못한 것이다. 과거의 건축이 현실의 건축이고 미래의 건축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050년에도 한옥을 짓고 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건축의 현실성을 파악함으로써 건축의 변증법적 통일성을 인식하자는 뜻이다.

건축은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 모방의 과정이라고 믿는 사람이 나다. 경험에 따른 지식의 축적, 그로 인한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그리고 다시 모방... 물론 신 재료와 산업혁명이라는 큰 변혁이 있었고 그에 따른 큰 변화가 있었지만 건축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건축은 그리고 도시는  느리게 퇴적되어 온 형성물이고 건축 형태의 언어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현재도 이 형성물은 계속 형성되어 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너무 일시적인 형태와 언어를 좇아 오브제로서의 건축보다는 과거와 미래의 건축을 이어줄 수 있는 역사, 도시, 현실, 집단의 삶, 결과적으로 건축 그 자체 속에 있는 건축을 해보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도 이렇게 적고 있지만 사실 아직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그냥 어렴풋이 감만 잡고 있다. 
하지만 현 건축계의 상황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축에 대한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좋고 나쁨 혹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준은 못되어 아쉽다.

먼 훗날 내가 건축을 계속하고 있다면 오늘 이 기록은 나에게 무엇인가 던지는 화두가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횡설수설을 끝내고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게끔 나에게 건축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신
이은영 선생님과 오경근 선생님, 김원식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중에는 더 나은 건축쟁이가 되어서 오늘처럼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2011년 5월 18일 홍대 커피스미스